
Fish
박신애 / 3분 / 2D 애니메이션 / 2008
(위 주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시놉시스 :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너, 그리고 나.
&

단지, 바라보다
김혜수 / 3분 / 2D 애니메이션 / 2009
(위 주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시놉시스 : 긴 장대 위 홀로 서있는 여자, 벼랑 끝에 서있는 남자의 만남
바야흐로 3D 애니메이션의 시대이지만, 2D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은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이 두 작품처럼 대사도 배경도 없이 흑백의 심플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거의 한 편의 '시'를 탐독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절로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함축된, 비유적인 의미들, 간결함, 그리고 아름다움.
위에서 열거한 대로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인 'Fish'와 '단지, 바라보다'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을 굳이 묶은 이유는, 이 작품들이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사랑을 간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답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ish'의 두 주인공은 꼬마아이와 물고기이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기에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가미가 없는 꼬마아이는 물 속에 오래 있을 수 없고, 물고기는 물 밖에 오래 있을 수 없다. 함께 있는 것이 좋은데, 태생적으로 다르기에 '함께'가 되는 순간 한 쪽이 반드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바라보다'의 두 주인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는, (무엇보다 '홀로'인) 남자와 여자다. 여자는 장대위에 서있고, 남자는 절벽에 서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발견하고, 만나서, 비좁은 장대위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다.

그러나, 둘이 함께 서기에 장대는 너무나 비좁고, 부둥켜 안은 그들은 몇 번이나 휘청이며 넘어진다. 그들 주위엔 오직 파도가 거친 바다, 바다, 바다 뿐.

그래서 결국, 'Fish'의 아이와 물고기는 헤어져서 각자가 있을 수 있는 곳에 머물기를, 물 속과 땅 위에 있기를 결정하고,

'단지, 바라보다'의 남녀 또한, 각자의 장대위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혹은 '그에 그치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두 애니메이션의 결론은 결국 '인간은 섬이다'라는 것일까? 서로 다른, 다를 수 밖에 없는 '타인'과 '함께'가 되기에는 우린 너무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하거나, 우리가 가진 이해와 관용의 범위가 아무래도 좁기 때문에?
작품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서로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더라도 '현실적으로' 함께하는 것이 고통인 관계도 있고, 일정 거리를 두었을 때 더 아름다운 관계가 있으니까. (그게 어떤 형태이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소유하려고 하는 과도한 욕심과 집착에 대한 경구들은 이미 너무나 많으니까.
문득, 김연수 작가의 소설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유독 좋아하던 구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찾아보고 보니 더더욱 이 애니메이션들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데)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사랑이 입을 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도시의 어둠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 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걸 모르면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는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 누구도. 누구도. 절대로."
- 김연수,「사랑이라니, 선영아」 중
그러나 이 구절들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인간은 섬이고, 우리는 결국 함께할 수 없다'라는 것의 분명한 온도차일 것이다.
그러니, 이 귀엽고 예쁜 애니메이션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때에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은, 아이와 물고기가 만날 수 있었던 '물가' 라는 공간이 아닐까?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또한, 그들이 서로 헤어지고 외로운 시간을 헤매는 동안, 서로가 만나기 전, 상대가 '있었던 자리'에 가본다는 것은 사실 무척 중요하다. (남자는 여자가 그랬듯 홀로 장대위에서 풍경을 바라보았으며 여자는 남자가 그랬듯 홀로 절벽위에서 풍경을 바라본다.)
즉, 두 애니메이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가능한한) '오래', (가능한한)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야가 확보 된다는 믿음이다. 그들이 거리를 두는 것은 결코 이젠 서로를 덜 사랑하거나, 잊어버리려는 시도가 아니다. 지난한 시도와 실패 끝에, 외로운 섬으로서 존재하지 않기 위해, 다른 섬과 사이좋게 손잡고 오래 행복하기 위해 터득한 방법인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삶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나의 인생을 타인의 인생에 겹치거나 맡겨버리려고 한다면, 결국 휘청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랑'하더라도, 오히려 '사랑하면 할 수록' 자신의 삶을,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테면 'Fish'의 주인공들은 '물'과 '땅 위'라는 완전히 분리된 각자의 세계,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약간의 노력을 통해(아이는 허리를 굽히고, 물고기는 고개를 빼든다던지) 서로 만날 수 있는 '물가'라는 중간계(!)가 희망처럼 존재하고 있다.
그에 비해 '단지, 바라보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험난하고 냉혹한 세상의 은유' 정도로 볼 수 있을 '바다'가 지배하는 듯 하다. 도망칠 공간이라고는 가느다란 장대 끝이나 절벽 뿐. '하나의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서 개인들이 무수하게 자신만의 (임시) 도피처를 세우는 것에 불과한, 끝없는 위태로움.
이렇게 본다면 두 작품은 얼핏 닮은 듯한 이야기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의 정서 또한 매우 다르기는 하다. 'Fish'가 동심과 성장의 분위기라면 '단지, 바라보다'는 고통과 성숙의 분위기랄지.)
그러나 '단지, 바라보다'에서도 희망의 공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인생이고 세계인 각자의 장대끝에 (비교적) 안전하게 선 두 사람이지만, 더 이상 혼자는 아닌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분리된 혼자이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서로를 향해 서있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Two shot. 어쩐지 서글프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물론 이 서툰 해석들은 전적으로 '나'의 관점일 수 있다.
서두에 말했듯, 이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차라리 한 편의 시에 가까우니까.
그러니 당신은 무엇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이런 시시한 문장들로 간단히 설명될 것이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다만, 정겹고 소박한 2D라는 질감과 '당신을 사랑하기 위한 거리'라는 이야기가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뭐든 '쿨'하기만 한 시대에 보기 드문 수줍은 고백같은. 3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고, 어느새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며 달아나버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들)의 여운은 오래오래 남는다.

안 녕
PS 그동안 차마 말하는 것조차 죄송스러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고 최고은님의 명복을 빕니다.
by 민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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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신나게살다 2011/02/28 21:02 # 답글
덕분에 좋은 작품 봤습니다.
jee 2011/03/03 10:56 #
와앗, 덧글 감사드립니다. *^_^* 앞으로도 좋은 작품 소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햇살 2011/04/12 18:53 # 삭제 답글
잘 보고 가요, 저는 고3인데, 친구들한테도 많이 소개할게요 :)마음이 따스해지는 좋은 작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jee 2011/04/16 01:07 #
아앗, 댓글을 이제야보았습니다. 좋게 봐주셨다니 기분 좋네요. 사실 요즘 학업(..)이 바빠 한달간 본의아니게 리뷰글을 못썼는데(..고3 학생분 앞에서 망발을.. 죄송) 안그래도 새 글 준비하던차에 힘이 나네요. 다시 부지런해져서 열심히 소개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_^